예전에 누군가 내게 미국이 제2의 고향 같겠어요.라고 당연한 듯 얘기했을 때 나도 모르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제2의 고향이라니. 그렇게 느끼기에는 이곳은 내게 아직 어렵다. 이십대의 반을 미국에서 보냈다는 것은 이 곳에 내 아픔과 외로움, 추억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 이곳이 집처럼 편안한 곳이라 느껴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곳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나에게 남의 나라들 중에서 가장 살기 편한 곳은 미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곳에 다시 찾아와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집을 부수고 수리해가면서 살게 될 줄은.
앞으로 남기는 집수리 관련 기록들은 지난 고생을 가물가물하게 기억하며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보다 생생하게 복기하기 위해서 될 수 있으면, 현재형으로 서술하려 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타지에 나와 집을 사 본 것도 처음이고, 집을 수리하는 것 또한 처음이라 뭣도 몰라서 막 해본 것 같다. 집을 사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집을 수리하는 것도... 이 집수리.. 이건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다. 진짜 몰랐으니까 막 한 거다. 그런데 또 돌이켜보니,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할 정도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걸 보아서..., 나는 그새 다 까먹은게다. 집을 수리하면서 나는 정말 많이 지쳐버렸다. drain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온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내 몸통이 하수구같이 내 정신과 에너지가 마구 쓸려 내려가는 걸 일 년 내내 느꼈으니까.
우리 집 공사는 대략 한 달 정도를 보고 시작했다. 그래서 집을 계약하고도 리스해서 살던 아파트에 계속 살았다. 집 공사를 시작하면 공사 마무리까지 예상 날짜보다 여유 있게 두 배는 잡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건 어떤 면에선 맞고 또 틀리다. 우선 두 배 정도의 여유를 잡아서 마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도 만의 하나일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으니 나쁘지 않은 (모험적인)선택이다. 그럼 맞지 않는 경우는 무엇이냐, 나의 경우 집수리는 일 년에 걸치어 끝났다. 그리고 그 일 년이 되는 달(month), 나와 남편은 이제 우리 집 수리는 그만 여기서 끝내는 걸로 하자! 라도 마음을 먹고 끝내기로 했다. 미국에서 집 수리를 하려고 마음먹으셨습니까? HGTV 방송 프로그램에 당첨되신 행운이 아니시라면, 돈이 많이 한도 끝도 없이 여유로우시거나 시간도 더불어 많으신 것이 아니라면, 일단 집수리를 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 보시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잊지 말자!!!
이렇게 저렇게 이차저차 집을 계약하고 드디어 집 열쇠를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집수리 공사가 시작된다. 집수리의 시작은 일단 집을 부수는데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집을 사자마자 집을 부숴버린다는 소리다. 이게..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집 데몰리션은 사흘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이틀간 집을 와장창 부수고, 떨어내고, 먼지 날리고...정말 이렇게 집이 와장창창 뜯기고 나가떨어져서 텅- 비워지는 것을 보이 속이 다 시원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업자다. 돈 내고 집 고치는 사람의 입장으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진다. ' 이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라는 혼잣말이 중얼중얼 계속 나온다.
그래도 이렇게 부숴놓고보니 잘했다! 싶은 일도 하나 있었다. 세상에 붙박이장을 떼어내려고 부수다 보니, 작은 장 뒤편에 주인 없는 돈다발이 뙇! 금덩이가 우르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않은가? 그래서 캐비닛을 뜯을 때,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지켜보았는데, 세상에 세상에...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것이 튀어 나오는 게 아닌가!!
저기 저 오른쪽의 TV장을 뜯어내었더니만..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창문 하나가 뙇! 길쭉하니 잘 뻗은 창문 하나를 그렇게 찾아냈다. 그래서 더욱 환해진 거실!! 오호홋!
내가 부수자고 맘먹어서 부서진 이 모든 것들이 돈이라는 것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요? 바닥에 나뒹구는 세면대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냥 잘 닦아서 쓸 껄...내가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아,내가 지난 달에 로또를 샀나? 어디서 돈이 호박채 굴러들어온다고 했던가? 내가 미쳤던게 아니라 지금도 살짝 맛이 간거같어.... 이런 생각을 할 때 즈음... 열심히 일하신 아미고 형님(일하시는 분들 중 대빵형님) 께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2층 큰 방에서 살짝 놓쳤던 정신줄을 얼른 붙잡고 창가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씨 유 투마로우~!!"
아저씨들 퇴근하신대요..
이걸 다시 보니 아... 만감이 교차한다. 다시 그 처참했던 방바닥들과 헐벗은 벽들이 생각나서 심난하다. 이렇게 일단 집 부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어우~ 힘들어. 맥주 어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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