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생각해보니 인터넷이 나온지도 꽤 되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때는 작고 네모난 플로피 디스크에 워드파일, 사진, 전공수업 자료들을 담아서 학교 전산실이나 피씨방에서 과제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까 영화 <접속>이 나오던 때였고, 하이텔 동호회에서 만나 홍대 락밴드가 결성되고 그러던 시절. 인터넷 세상에서 즐길 줄 아는 자와 아직은 살아있는 , 리얼한, 역동적인 아날로그 세상에서 잘 노는 사람들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인터넷 메일 주소 없어도 어디가서 이상한 사람 취급 안 받는 그런 시대였다. 삐삐와 PCS의 시절 말이다.
그때 아이러브스쿨이 유행해서 이핑계 저핑계로 오래전 학교 친구들이 다시 모이는 일들이 많았다. 나보다 살짝 연배가 더 있으신 분들은 아이러브스쿨에서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그러다 이혼하고 뭐 이런 야사도 종종 들리던 때였다. 동창회가 가정 파괴 원인제공이라는 식의 기사도 본 적이 있으니까. 아무튼 기사제목 자극적으로 뽑는 거, 그거 하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인터넷에서 다음카페가 한창 무르익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도 몇몇 카페에 열성회원이었고, 카페에 글들이 올라오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서 시간만 나면 전산실이나 근처 피씨방을 가서 괜히 카페에 들어가 확인해 보던 시절이 있다. 그런 때에 해외에 나오게 되었는데, 아무리 인터넷이 잘 되었다지만 지금과 같지 않았다. 같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세상은 아직 디지털 세상보더 더 빠르고(이메일 확인보다 전화가 더 빠르고), 안전하고-(컴퓨터가 뻑나서 자료가 날아가거나 파일이 깨지는 일도 없고), 믿을만한 곳( 직접 만나서 전하는게 더 서로 안심) 이었다. 누구든지 한번 해외에 단기 연수나 긴 베낭여행이라도 나오면 아주 친한 친구 몇몇을 제외하고는 연락을 계속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무심히 던져둔 이 디지털 세상은 마치 제크와 콩나물의 콩나물처럼 엄청난 속도로 자라더니 그 끝이 어딜지 이제 살짝 무서워지려고 한다. 그렇게 커가는 디지털 세상에 <카카오 톡>이 생기더니 세상에, 이제 나는 미국에 있어도 매일 아침 카톡방에서 수백개의 카톡 메세지 수를 확인하고 혼자 뒷북 신나게 치며 대화를 확인하고 낄낄거리며 커피를 마신다.
엊그제 내가 자는 사이에 한국에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성추행 고소장 소식과 시장의 죽음. 이 뉴스는 그 어떤 제목을 달아도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소식이다. 그리고 나의 정치적 성향과 별개로,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므로, 이거 진짜 너무하다며 분노했다. 그 여직원이 가여워서 어떻하나... 잘못한 거 하나 없이 이렇게 고통받아야하는지. 카톡을 읽는 와중에 중간에 놓쳤다 다시 보는데, 한 동창이 이런 말을 한다. 그 친구는 남자도 이해 안되지만 그 여자도 이해가 안된단다. 왜 이제와서 얘기하냐고 한다. 나는 내가 뭘 잘못 본 줄 알았다. 순간 다른 얘기로 화제가 바뀐줄 알았다. 이에 다른 한 친구가 다다다다다~~~ 말을 해줘서 그 이야기는 너머가졌지만, 나는 우리 또래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를 진짜 세게 맞은 느낌이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나는 정말 누구나 전부 다 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커서든 제아무리 공주같이 자란 사람이라 할지라고 한 번쯤은 이렇게 소름돋게 기분 나쁜 경험 한 번쯤은 다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어릴 때 만원 버스 안에서 누가 엉덩이를 꽉 잡은 일 단 한 번이라 하더라고, 그 불쾌함과 분노는 꽤나 크고 오래 간다. 아니 그 때 내가 "아니 어떤 ㄱㅅㄲ야???!!!" 라고 나는 왜 소리치지 못했을까? 왜 얼굴을 확 긁어버리지 못했을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자기 학대는 물론이고, 아, 왜 그 새끼 얼굴을 제대로 봐두지 못했을까? 이런 후회까지. 정말 법이고 나발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이쪽 법에 너무 개판이고 판사도 뭐 같은 패거리니까 어디 홍길동이나 베트맨이 나타나서 손모가지 다리몽둥이를 다 분질러 놨으면 좋겠다고 씩씩 거린 기억들이 있을거다. 없다면 아마 아직 너무 어려서 일곱 살이거나, 아니면 너무 커서 충격으로 잊고싶어서 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냥 별거 아니였다고 계속 자기 최면을 걸어서 묻어버렸을 수도 있고.
남자들도 요즘엔 그러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예전에 나 자랄때만 해도 가끔씩 동네 어르신(이라고 말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나보다 열 살, 열 다섯 살 많은 분들인데, 뭐 노인도 아니다 )들이 "어이~ 이놈 얼마나 컸는지 한 번 만져보자~ 허허 일로와봐 " 이런 기절 초풍할 성추행들... 아마도 경험 한 적 있을 게다. 게다가 옛날엔 아들이면 홀딱 벗겨서 올누드에 금반지 끼워서 사진도 찍고 그거 크게 해서 거실 서까래에 걸어두고들 했으니까. 아들 있는 집 인테리어 소품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지. 그걸 어느 누가 좋아했겠나. 다행히도 남자애들이 중고등학교에 가면, 코 밑이 거뭇거뭇하고 목소리 웅얼웅얼~ 이상한 동굴소리 나오는 시기가 오면 아무도 그런 장난을 치지 않는다. 그런데 여학생의 경우는 다르다. 그렇게 장난이라고 우기며 넘어가려는 일이 성인이 되서도 계속 된다. 이런게 남자한테 하면 미친 짓이 명백하듯, 여자한테도 그러면 안되는 거다. 진짜 얼척이 없는 레파토리인, '손녀딸처럼 생각해서 귀여워서 그랬다, 딸같이 생각해서 친근함을 표시했다' 그런 소리 하는데, 딸이나 손녀한테 그러면 그건 진짜 죄질이 더 안 좋아지는 거다.
딸을 키우는 동창의 그 말에 나는 머리가 쭈삣 섰다. 세상은 아직도 소돔과 고모라구나..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데에는 얼마만의 시간이 필요할까?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할까? 그런 생각으로 아직까지 마음이 무겁다. 어떻게 하면 알아듣게 설명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런 태도의 아버지는 이미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다. 마음이 밤 고구마 백 개 먹은거 같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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